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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어 이야기

lo9life 2021. 1. 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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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때 처음 접한 일본어

내가 일본어를 처음 접한 때는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이다. 수강신청에 교양 선택 과목을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르고 있었다. 선배들이 조언하기를, 교양 일본어는 쉬워서, 공부를 하나도 안해도 A를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오호, 그래? 완전 거저먹는 과목이네. 마감되기 전에 당장 수강 신청을 했다. 그 땐 몰랐다. 그 조언에는 단서가 하나 생략되어 있었음을.

일본어 수업 첫 시간. 교과서를 펼치니,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라.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만 못 읽는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잘 읽는다. 그제서야 알았다.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한 사람들한테만 쉬운 과목이라는 것을.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일본어 글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 한자 세 종류로 되어 있다. 히라나가부터 배우고 가타카나를 배운다. 일본어의 한자는 음독과 훈독 두 종류로 읽는데, 실제로는 여러가지로 발음한다. 예를 들어, 日(날일)자는, 지쯔, 니찌, 닛, 카, 히, 비 등으로 발음될 수 있다.


나는 히라가나 외우는 것부터 어려웠다. 50개도 넘는 글자가 꼬불랑 꼬불랑 비슷하게 생겨서 아무리 외워도 헷갈리고 헷갈렸다. 다음 단계인 가타카나는 외울 엄두도 못냈다. 특히나, 일관성 없는 한자 읽기는 외울 때마다 짜증이 났다. 중간고사때 쯤 되니, 간신히 히라가나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기말고사때 쯤 되니, 간신히 문장 몇 개는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업 진도는 이미 한참 앞서 가고 있었다. 2년 동안 일본어를 공부했던 사람들과 나처럼 일본어를 처음 보는 사람과의 격차는 한 학기만에 따라잡기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당연히도 성적은 F가 나왔다.

수강 신청 때 허세 섞인 조언을 한 선배들이 야속했다. 그걸 또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내가 너무 순진했다.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좋은 인생 경험 했다고 쳐야지. 전공 과목으로 F 받지 않은 게 어디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후로 일본어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어렵게 외웠던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같이 지워졌다. 그 후로 25년 동안, 일본어가 필요한 일은 없었다.

난생 처음 일본을 가다

회사 생활 동안 세계 각국 여러나라를 다녔지만, 일본에는 갈 일이 없었다. 일본만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일본에 추가 사업의 기회가 생겼다. 기회를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TFT가 꾸려졌다. 여느때라면 일본 전담팀 사람들이 알아서 했겠지만, 그 때는 다른 프로젝트로 바빴다. 그래서 TFT는 주로 다른 팀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나도 그 팀에 합류했다. 고객사에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오사카에서 미팅이 잡혔다. 나는 사업부 대표로 미팅에 참석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일본을 가게 된 것이다.

네 명이 같이 가는 출장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일행 중에는 일본 출장을 많이 가 본 사람도 있고,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 출장을 나가기 전에는, 출장지의 공항, 교통편, 숙박 등 이것 저것을 알아본다. 그런데 이번은, 갑자기 잡힌데다가, 일정도 짧고, 다른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고, 다경험자와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사전 조사 없이 가게 되었다.


북적거리는 오사카 거리



일본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고객사 사무실까지 이동했다. 걷다가, 지하철을 탔다가, 다시 걸어서 이동하는 길이었다. 나는 가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주위 간판 표지판이 전부 일본어나 한자로 되어 있는데, 그 의미를 하나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사카는 대도시이다. 사람도 많고 길도 복잡하다. 다들 목적한 대로 익숙하고 거리낌 없이 걷고 있는데, 나만 어리둥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서와, 일본은 처음이지? 그러다 일행이라도 잃어버리는 날엔 큰일이다 싶어서, 일행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여기가 어딘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다음날, 고객사와 미팅을 했다. 지금까지 나는 유럽, 호주, 러시아 등지의 여러 고객사를 상대해 왔고, 미팅에서는 항상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미팅에서 자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였다. 대놓고 귓속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미팅은 일본어로 진행되었다. 고객사도, 우리측도 일본어를 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나만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글을 읽을 수도 없고,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답답함은 출장 내내 계속되었다.

다음날, 2박 3일 출장이 끝나고 귀국을 했다. 나의 답답함도 끝이 났다. 일본어는 다시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일본향 프로젝트를 하게 되다

몇 년 뒤, 일본에서 판매될 셋톱박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보통의 셋톱박스는 자국어와 함께 영어로 된 UI도 지원한다. 그래서, 그 나라 언어를 모르더라도 개발하는데 별로 지장이 없다. 그런데, 일본향 셋톱박스의 UI는 일본어로만 되어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면 셋톱박스를 아예 다룰 수가 없었고, 개발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미 경험한 두 번의 안좋은 기억. 내게 일본어는 일종의 트라우마 였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 하기도 바쁜 와중에, 일본어까지 배워야 하다니.

구글을 검색하니, 유튜브에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각각 한시간만에 외울 수 있는 동영상을 찾아 주길래, 호기심에 틀어 보았다. 어느 고등학교의 수업시간 같은 비디오다. 첫 일본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일본 글자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다. 글자를 연상하기 쉽게 한국어나 사물과 연관시켜 가르친다. 그런데, 이거 진짜 재미있다. 선생님의 기지가 어이없지만 재치있다. 어느새 점점 수업에 빠져들었고 한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재미있게 배운 내용이라 그런지 며칠이 지나도 기억에 남았다. 두세번 들으니 대부분의 글자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1시간만에 끝내는 히라가나 youtu.be/AaURGYXBcDA

1시간만에 끝내는 가타카나 youtu.be/---Duu2ND-0

대학교때는 히라가나를 외우는데 두 달이 걸렸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구글 덕분에 며칠 만에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아니지, 구글 덕분도 있겠지만, 내가 필요했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니까.

시작이 반이라, 스타트를 끊으니 관성이 붙었다. 나, 공대나온 남자다. 한 번 관성이 붙으면 단순 무식하게 직진한다. 내친김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봤다. 일본어 학습과 관련된 책은 엄청나게 많았다. 한 권을 집중적으로 파는 것은 재미가 없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몇 권 골라 훑어 보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몇 권 골라 읽었다. 대충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초급 일본어의 문장이나 어휘는 한국어와 진짜 비슷하다. 한국어에 해당하는 일본어 단어를, 한국어와 같은 어순으로 배열하면 끝이다. 거의 1:1 대응이다. 완전 거저 배우는 느낌. 난이도가 영어의 1/10도 안되는 듯.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 일본어는 이렇게 쉬우니, 3년만 하면 웬만한 수준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1/10 노력으로 새 언어를 배울 수 있다니, 이건 완전 남는 장사다. 점점 일본어가 만만히 보이기 시작했다.

내 업무를 위해 필요한 일본어의 수준은, 히라가나 가타카나와 한자를 읽는 정도였다. 제품 UI에 나오는 글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난 이미 그 수준은 되었다. 그런데, 초급 일본어는 정말 쉬워 보였다. 조금의 노력만 더 하면 금방 잘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닐 정도로 절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서 일본어 책을 읽는 정도로만 했다. 비록 F를 맞긴 했지만, 대학교때 주워들은 약간의 풍월도 도움이 되었다. 중고등학교때 배운 한자도 도움이 되었다. 배워두면 언젠가는 쓰일 날이 있나보다.

개발 프로젝트를 하면, 당연히 현지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된다. 나도 출장 스케줄이 잡혔다. 나가기 전에 목표를 하나 세웠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일본어로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도서관에는 그런 책이 여럿 있었다. 책을 보며 음식 관련된 단어를 정리하고 외웠다. 내가 관심있는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이라, 쉽게 집중했고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유럽, 호주 등의 나라는 식당 물가가 비싸다. 그래서, 장기로 출장을 나가면 경비를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음식을 직접 해먹는다. 그런데, 일본의 식당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살짝 비싼 정도이다. 그래서 점심, 저녁을 모두 식당에서 사먹는다.


며칠 후 출장을 나갔다. 저녁이 되어 근처 식당에 갔다. 메뉴판을 보았다. 아, 좌절했다. 거의 읽을 수 없었다. 간신히 읽은 것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종업원에게 더듬 더듬 일본어로 물어보려 했지만, 입은 제대로 안떨어졌고, 종업원의 말도 무슨 소린지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공부해간 단어는 메뉴판에는 나오지 않았다. 공부해간 표현은 종업원은 쓰지 않았다. 책과 실전은 전혀 달랐다. 결국 영어로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일본어를 만만히 보았었다. 시작한 지 두세달, 그것도 책이나 몇 권 설렁설렁 훑어본 한 주제에, 일본어 주문은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도쿄 식당에 있던 메뉴판



며칠 식당을 다니다 보니, 실전에서 쓰이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여러 명이 식당에 갔는데 따로 따로 앉아야 하는 경우에는 바라바라(バラバラ), 계산 할 때 각자 계산할 때는 베쯔베쯔(別々), 괜찮아요는 다이죠부(だいじょうぶ [大丈夫]) 등등이다. 그래봐야 고작 단어 몇 개 이다. 회화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일본어 실력을 더 늘리고 싶어졌다.

일본어에 취미를 붙이다

인터넷에서, 일본어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NHK에서 만든 일본어 강좌를 찾을 수 있었다. 여러나라 언어 버전이 있고, 물론 한국어로 된 강좌도 있다. 서너 마디의 대화를 들려주고, 거기에 나온 단어와 문법을 설명하는 식이다. 나에게 딱 맞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무료이다. https://www.nhk.or.jp/lesson/korean/

일본말 첫걸음, 무료청취&교재 | NHK월드 라디오일본

일본의 공공방송 NHK가 제공하는 신뢰할 수 있는 무료 일본어 강좌입니다. 도쿄의 한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안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법과 어휘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www.nhk.or.jp


강좌의 mp3를 다운 받아서 듣기 시작했다. 들으려고 따로 시간을 내지는 않았다. 그저 출퇴근길이나 여기 저기 이동할 때 듣는 정도였다. 10분짜리 강좌가 48개 있으니, 다 들으려면 총 8시간이 걸린다. 일주일이면 한 바퀴를 충분히 돌고, 한 달이면 네 바퀴를 들을 수 있다. 일본어는 발음이 쉬워서, 네바퀴면 강좌에 나온 문장 전체를 외울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강의자료를 다운받아서 틈틈이 보기도 했다.

NHK 강좌도 여러 번 듣다 보니 지겨워졌다. 다른 mp3는 없을까?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도 일본어 강좌 mp3를 많이 공개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 여러 개를 다운 받아 들어 보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들었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여러 바퀴를 들었다.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도서관에 가서 해당 mp3의 책을 찾아 보았다. 이렇게 공부하니, 따로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고독한 미식가'는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일본 드라마이다. 재벌이 아닌 서민적인 직장인이 주인공인 것도 좋고, 맛집을 찾아다닌다는 주제도 좋고, 마지막에 작가가 나와서 술한잔 하는 장면도 좋다. 무엇보다, 대사가 빠르지 않아서 좋다. 주인공의 독백이 많은데, 항상 천천히 말한다. 내 실력에도 간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온다. 발음도 쉬운 편이어서, 조금만 노력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면 “はらがへった(하라가헷다)”라고 말한다. 직역을 하자면 “배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일본인에게 들은 바로는, 이 표현은 실제로는 쓰이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라고 한다. 실생활에서는 “お腹すいた(오나까스이따)”란 말을 쓴다고 한다.


수영을 가르치는 방법 중에 TI (Total Immersion)란 교수법이 있다. TI 코치 중에 우리나라에 제일 유명한 사람은 타케우치 신지이다. 유튜브에는 그의 수영 강좌가 여럿 있다. TI 수영의 이론을 일본어로 설명한다. 그런 강좌를 mp3로 만들어서 출퇴근때마다 들었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mp3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관심 있는 분야라서, 반복해서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영어 공부에서도 이런식으로 공부했었고, 일본어에서도 똑같이 히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 일본어로 된 메일이 종종 온다. 나름 우리를 위해 배려를 해 준다고, 한국어 번역을 같이 준다. 그런데 무슨 번역기를 쓰는지, 엉터리 문장이 종종 섞여 있다. 그럴 때는 파파고로 다시 번역을 해서 본다. 일한, 한일 번역은 구글보다 파파고가 훨씬 좋다. 간혹 파파고도 잘못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비어있다'는 의미로 空자가 들어있는 문장을, 파파고는 ‘하늘'로 번역하는 식이다. 이럴 때는 평소에 일본어를 공부해 놓은 덕택에 원래 의미를 알 수 있다.

가끔은 메일의 원문을 읽어본다. 주요 단어는 한자로 되어 있다. 외래어는 가타카나로 되어 있고, 글자 그대로 읽어보면 영어 단어를 유추할 수 있다. 조사, 접속사, 고유어 등은 히라가나로 되어 있고, 자주 쓰이는 단어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몇 몇 문장은 번역기의 도움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한자의 경우 뜻은 알아도 발음은 모르기 때문에 읽을 수는 없다.

나는 일 때문에 일본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만해 보여서 지금도 계속 공부한다. 일본어는 알면 알수록 만만해 보였다. 발음은 단순하고 문법은 간단하고 어휘는 익숙하고 용법은 우리랑 비슷하다. 그런데 보이기에만 만만하다. 내가 가만히 서 있으면 눈앞에서 잡아보라고 유혹한다. 얼른 다가가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눈앞에 보이긴 하지만 잡히지는 않는다. 이 무한루프에 빠져 아직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고급 일본어는 아주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어는 한국인이 제일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한국어와 비슷한 일본어

어족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어와 일본어는 서로 유사성이 없다. 고유어 중에 일치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두 언어는 수천년을 독자적으로 발전하다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에 한자를 전달해 주면서 한자 단어도 많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 후에, 한자를 본따서 일본 글자가 만들어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하게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번역한 단어가 우리 말에도 그대로 도입되었다. 그래서, 한자로 된 단어는 우리 말과 일본어가 똑같은 경우가 아주 많다. 일본어의 한자 발음도 우리말과 비슷하다. 필경, 백제가 전달해 준 한자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료', ‘무료' 같은 일부 단어는 우리와 똑같이 발음한다.

단어의 쓰임새도 서로 비슷하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걸다'라는 단어는 ‘옷을 걸다'와 ‘전화를 걸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사용된다. 일본어의 ‘かける(걸다)’란 단어도 옷을 걸 때와 전화를 걸 때 둘 다 사용된다. 우리말의 ‘또는'은 영어의 ‘or, otherwise’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일본어로는 ‘または’라고 한다. ‘また’는 ‘또’의 뜻이고, ‘は’는 우리말의 ‘은/는'에 해당하는 조사이다. 두 단어를 결합하면 ‘또는'이 되는 공식이 두 언어가 똑같다.

‘또' + ‘는' = ‘또는'
‘また’ + ‘は’ = ‘または’


우리말의 ‘은/는’, ‘이/가’, ‘을/를’ 조사에 해당하는 일본어 조사는 ‘は(은/는)’, ‘が(이/가), ‘を(을/를)’이다. 이런 조사의 쓰임새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너무도 비슷해서 의미나 뉘앙스를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저, 몇 안되는 예외사항만 외우면 될 뿐이다. 이런 점은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우는데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학생이다'와 ‘내가 학생이다'라는 문장은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외국인이, 당신에게 두 문장의 차이점을 알려달라고 하면,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두 문장의 뉘앙스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그 외국인이 두 조사를 제대로 사용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공부해도 ‘in’, ‘at’, ‘on’의 용법을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어 ‘は(은/는)’과 ‘が(이/가)’의 용법과 뉘앙스를 이미 알고 있다.

그만큼 우리말과 일본어는 가깝다. 언어만 놓고 보면, 서로 친척인 민족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아마도 천년 이천년 동안 교류를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결과이리라. 과거에 우리는 일본에 한자와 문화도 전해주고 잘 해줬는데, 요새는 왜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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