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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과 모노프로스트

lo9life 2024. 6. 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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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진단을 처음 받았던 것은 대략 5년 전 쯤으로 기억한다. 건강검진에서 안압이 높아서 녹내장이 의심되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소견 덕분에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녹내장이 무슨 병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백내장 비슷한건가? 눈앞이 녹색으로 보이는 병인가? 내 눈은 멀쩡한데 무슨 녹색으로 보인다는 것인가?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와이프가 병원에 가 봐야 한다고 우겼다. 직접 근처 안과를 알아보고 예약까지 하는 바람에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와이프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근처의 안과를 찾아갔다. 

의사의 진료를 받기 전에 안과에서는 많은 검사를 했다. 각종 기계에 눈알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댔다. 시야 검사도 했다. 30분쯤 검사를 하고 나서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를 만났다. 의사로부터 오른쪽 눈에 녹내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녹내장이 무슨 병인지도 같이 들었다.

녹내장은 망막의 시신경이 서서히 죽어서 없어지는 병이다.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일부 시야가 안보이기 시작한다. 서서히 안보이는 영역이 넗어진다. 그러다 결국엔 시력을 잃게 된다.

이 병의 무서운 점은 자각증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력을 잃어가는데 자각증상이 없다고? 그렇다. 없다. 인간의 뇌는 신기하게도 안보이는 부분을 채워 넣는 능력이 있다. 왼쪽 눈의 일부가 안보여도 오른쪽 눈으로 보이는 부분을 채워 넣는 것이다. 우리가 맹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갑작스레 안보이게 되면 당연히 자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안보이게 되면 자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그래서 더 모른다.

녹내장의 두번째 무서운 점은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번 없어진 신경은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약을 쓰거나 수술을 해서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게 할 수는 있겠으나, 사라진 시야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처음엔 그 무서움에 잠을 못이뤘다. 최근에 수영장을 다닌 것이 영향을 미쳤을까?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가지 모르고 살 수 있었나? 오른쪽의 녹내장이 왼쪽까지 옮겨가면 어떻게 하나? 결국엔 안보이는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녹내장의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안압을 낮춤으로써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게 할 수는 있다. 병원에서는 안압을 낮추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모노프로스트라는 이름의 약이었다.

의사와 약사는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1. 일반 안약과 비슷하게 눈알에 한방울 떨어뜨린다.
  2. 눈알에서 흘러나온 물은 반드시 닦아내야 한다.
  3. 잠들기 전 하루에 한 번만 쓴다. 

처음엔 안약을 넣는 것이 아주 어색했다. 한방울 떨어뜨리기도 어려웠거니와 눈알에 정확히 떨어뜨리기도 어려웠다. 두세방울 시도해야 겨우 눈알에 떨어뜨릴 수 있었다. 잊지 않고 안약을 넣기 위해 매일 밤 10시에 핸드폰 알람을 맞춰 놓았다.

그 후로 3개월마다 안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검사 결과 다행히도 녹내장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안압이 좀 문제였다. 정상적인 안압의 범위는 10~21mmHg이다. 안약을 넣기 전의 내 안압은 23~24 정도였다. 안약을 넣고 나서는 20~21 정도의 수치로 내려갔다. 수치는 정상 범위에 들긴 하지만, 의사는 안압이 더 떨어져야 한다며 걱정을 했다. 나는 알람까지 맞춰가며 매일 잊지 않고 안약을 넣고 있다며 항변했다. 안압은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태로 몇 년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처럼 안과에서 처방전을 받아다 안약을 사러 약국에 갔다. 약사는 평소처럼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매번 듣던 주의사항이라 평소처럼 흘려듣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한방울이 아니라 두방울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나요?"

약사가 대답했다.

"이 약은 두방울 떨어뜨리면 효과가 떨어지는 이상한 약입니다."

이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까지 5년 동안 안약을 두방울씩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안약을 넣는 것이 어색해서 두세방울씩 넣던 것이 지금까지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동안 내 안압이 내려가지 않았던 원인이 아닐까?

그래서 그 날부터는 안약을 한방울씩만 넣었다. 그렇게 석달이 흘렀다. 다시 안과를 찾아 검사를 했더니 안압은 16 정도가 나왔다. 매우 안정적인 수치로 변한 것이다. 약 한방울 차이에 안압의 변화량이 꽤 큰 것에 놀랐다.

의사나 약사는 나에게 안약을 "한 방울 넣으라"고만 말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두 방울을 넣으면 안된다, 두 방울을 넣으면 효과가 반감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즉,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듣지 못했다. 내가 그 동안 두 방울을 넣었던 이유는, 초반에 안약 넣는 것이 서툴러서 눈알에 조준을 못하거나 눈을 깜빡거려서 약을 제대로 눈알에 넣지 못했고 그래서 여러번 시도해야 했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의사가 두 방울을 넣었을 때의 영향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안약 넣는 것이 익숙해 진 다음부터는 한 방울만 넣었을 것이다. 

그동안 잠들기 전에 넣으라는 주의사항은 잘 지켰다. 의사로부터 그 때 약을 넣어야 가장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즉, "왜"라는 이유를 들었기 때문에 잘 지킨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설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시를 어떻게 이행하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상세한 복약지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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