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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 이야기

lo9life 2020. 12. 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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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 공부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I am a boy, you are a girl 이 처음 배운 문장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입시에 중요한 과목이었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교에서의 영어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공부 제1의 목표는 대입 시험을 잘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문법 위주로 공부했다. 물론 듣기평가도 있었지만, 문법과 독해에 치중했다. 대학교에 가서는 원서를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읽고 해석하는 위주로 공부했다. 주위 친구들도 다들 같았다. 그때는 대부분 그랬다.





대학교 1학년. 기말고사에 영어 회화 시험이 있었다. 원어민 교수님과 2~3분 정도 짧게 보는 시험이었다. 생활속의 여러 상황이 찍힌 사진을 보고 그 상황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하는 시험이었다. 내게 주어진 사진은 병원 입원실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상황이었다. 그 교수님은 내 생애 처음 만나본 외국인이었다. 나는 완전히 얼어 버렸다. 교수님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에서는 아무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She is working.” 딱 한마디만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너같은 사람 많이 봤어.’란 의미였다. 그래도 출석을 잘해서인지, F를 받지는 않았다.

여름 방학에는 한 달 정도 원어민 강사와 영어 회화를 공부하는 수업을 들었다. 한 반에 10명 정도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는 강사가 학생들과 돌아가면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강사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있는 학생은 한 두 명 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만 빨개질 뿐이었다. 강사가 설명을 할 때는 수업 진행이 잘 되었다. 학생에게 질문을 하면 수업 진행이 막히기 일쑤였다. 결국에는 주로 강사 혼자 이야기하고, 대화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학생들은 편하게 듣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수업 진행도 잘 되었다.

같은 과에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가 있었다. 어쩌다 그 친구와 같이 The Flintstones 고인돌 가족이라는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원어 비디오이고 영어 자막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비디오를 보며 연신 깔깔 웃어댔다. 하지만 나는 자막 읽고 해석하기 바빴다. 그나마도 후다닥 지나가는 바람에, 문장 해석은 커녕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었다. 당연히 전혀 재미도 없었다. 엄청난 영어실력의 격차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후로도 여전히 영어는 읽고 해석하기만 공부했다. 비디오야 한국어 자막이 있는 것을 보면 되는 것이었다. 실생활에서 영어로 듣고 말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듣기 말하기를 못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처음 맞은 실제 상황

첫 직장 2년차. 우리 회사는 전화국에 들어가는 대형 통신 장비를 만들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입자 가정에 들어가는 ADSL 모뎀은 다른 회사에서 납품을 받았는데, 껍데기만 한국 상표를 달고 있을 뿐 사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나는 그 모뎀을 테스트하는 담당이었다. 테스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디버깅을 위해서 모뎀업체 한국인 직원과 말레이시아인 엔지니어가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How do you do? Glad to meet you. 인사하고 소개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같이 온 한국인 직원에게 통역을 해 달라고 했는데, 자기는 영업사원이라 기술적인 내용은 통역을 못한단다. 결국 내가 말레이시아 엔지니어와 직접 대화해야 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엔지니어가 해야 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었다. 남의 회사에 와서, 테스트 환경을 파악하고, 왜 테스트 결과가 나쁜지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까지 마련해야 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쉬운 것이었다. 내 회사에서, 테스트 환경을 설명하고, 엔지니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쉬운 일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영어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엔지니어에게 테스트 환경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맞는 실제상황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반사적으로 문법 체크 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틀려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오버클러킹 풀가동 되었다.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문법에 집중하니, 간단한 문장도 말하기 힘들었다. 결국 말하기는 포기하고 손짓 발짓에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겨우 설명을 끝낼 수 있었다. 5분이면 끝날 일이 30분이 넘게 걸렸다. 당이 떨어져 다리가 후들거렸고,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말레이시아 엔지니어는 그 날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왔다. 그의 영어 발음은 미국식 발음과 달랐다. ‘Two’를 ‘뚜’라고 발음하고, ‘8 mega’를 ‘엑-메까’라고 발음했다. 아니,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우리가 콩클리쉬 발음을 하듯이, 말레이시아식 발음을 하는 것이겠지. 가뜩이나 영어를 못 알아 듣는데, 발음까지 달라서 두배로 힘들었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제서야 영어 회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당장 마이마이와 영어회화 테이프를 샀다. 출퇴근 할 때마다 귀에 꽂고 하루에 두 시간씩 들었다. 기초부터 중급레벨까지 2년 넘게 들은 것 같다. 음악은 팝송만 들었고, 영화는 미국 영화만 보았다. 물론 한국어 자막이 있는 것이었다. 한국어 자막이 없으면 내용 파악이 안되서 어떤 영화를 봐도 재미가 없었다.

미국 출장

2년 뒤. 두번째 회사는 전 직원이 열댓명 정도인 작은 곳이었다. 그 당시 만들던 제품은 Jetstream이라는 미국 회사의 칩셋을 쓰고 있었는데, 영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 제품을 디버깅하려면 Jetstream 엔지니어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장님과 함께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출장이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장님 말로는, 미국에 사업 파트너가 있어서 우리를 안내하고 숙소도 마련해 줄터이니, 나는 가서 일만 하면 된다고 해서 안심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서 첫 관문은 입국심사였다. 사장님이 앞에 줄을 서고 나는 뒤에 있었다. 사장님 차례가 되었다. 사장님의 입국심사관은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한국인 2세쯤 되어 보였다. 국제도시답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구만. 사장님의 입국 심사는 한국어로 진행되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심사관은 백인이었고, 당연히 영어로 질문을 했다. 처음 몇 질문은 미리 준비한 리스트에 있는 것이어서 잘 대답할 수 있었다. 다음 질문은 숙소에 대한 것이었는데, 예상 리스트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진짜로 몰랐으니까. 갑자기 심사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졌다. 재차 강한 어조로 질문한다. “너 오늘 어디서 잘꺼냐고?” 헉. 뭐지? 쟤 왜 저래? 내가 어디서 자는지 니가 왜 궁금한데? 하지만 외국인 그것도 백인에게는 최대한 성의껏 대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그래서 이미 입국심사를 마친 사장님을 불러 물어보았다. “오늘 숙소가 어딘지 아세요?” 사장님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나는 심사관에게 다시 대답했다. “I don’t know.” 심사관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지더니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우리는, 사장님의 심사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다. 둘이 뭔가 쏼라쏼라 하고 나서야 내 심사관의 얼굴이 풀렸다. 그제서야 나도 풀려날 수 있었다.

입국 심사에서 주로 물어보는 것은 숙소와 귀국편이다. 숙소나 귀국편이 없으면 불법체류 의도가 있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증명할 수 있는 서류나 이메일 등을 프린트했다가 보여주면 문제가 없다. 현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주요 질문이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의심한다.


겨우 겨우 공항을 빠져나왔다. 차를 렌트해서 시내로 향했다. 배가 고파져서 맥도날드에 갔다. 복잡하게 주문하기는 어려우므로 빅맥세트를 주문했다. 직원이 묻는다. “히라로?” 뭐라고? 히라로가 뭐야? 내가 못알아 들으니, 큰 소리로 다시 묻는다. “히라로?” 아, 뭐지? 뭐래는 거야? 직원이 한심하다는 듯이, 내 뒤쪽을 가리킨다. ‘너 때문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잖아.’란 의미였다. 아, 씨바 모르겠다. 나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Yes, please.” 결국 포기한 직원은 빅맥세트를 싸 주었고, 우리는 계산을 치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Here or to go? 여기서 먹을래, 포장해 갈래를 묻는 것이었다.

어찌 어찌 현지 파트너를 만났고,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호텔방에 있는 랜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그런데, 인터넷이 안된다. 분명히 호텔에서는 인터넷 된다고 했었다. 나, 공대나온 남자다. 대학원때 전공이 인터넷이었다. 바로 디버깅에 들어갔다. 포트 연결은 문제가 없었는데, 아이피 주소를 못받아오고 있었다. 프론트에 전화를 했더니, 관련 부서를 연결해 주었다. 내가 물었다. “너네 DHCP 쓰냐? Static IP 쓰냐?” 관련 부서 사람이 못 알아 듣는 눈치다. 한번 더 말해줘도 여전히 못 알아 먹는다. 내 발음이 그렇게 이상한가? 아니면 너무 전문적인 질문을 한건가? 관련 부서라며, 이 정도 용어는 알아야 되는 거 아닌가? 잠시 후 직원이 직접 방으로 올라왔다. 이것 저것 만져보더니, 잘 모르는 눈치다. 딱봐도 네트워크 비전문가다. 휴, 내 발음이 후진 것은 아니었어. 돌아가서 자기네 장비를 점검해 보겠단다. 잠시 후 인터넷이 정상화 되었다.

다음날, Jetstream 회사에 방문을 했다. 담당자를 만났는데, Raj Ghuman이라는 인도 사람이었다. 인도식 센 발음을 했다. 아니,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같이 디버깅을 했는데, 서로 협조적이어서 의사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 결국 원인을 찾았는데, 접지선 문제였다. 전원을 접지선이 있는 콘센트에 꽂으니 문제가 사라졌다. 우리쪽에 원인이 있는 것이었지만 서로 대화하며 디버깅을 한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엔지니어 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고 아쉬운 사람이었다. 정해진 기한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질문을 많이 해야 했다. 그래서 이것 저것 가릴 겨를 없이 마구 문장을 만들어서 던졌다. 문법에 맞는 문장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의사만 전달되면 그만이었다. 담당자도 내 개떡같은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었다. 사실 엔지니어끼리의 대화는 어렵지 않다. 명사만 몇 마디 던져도 대충 알아듣기 때문이다.

상하이 출장

1년 뒤. 우리 회사는 상하이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제품을 출품했다. 회사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영업 직원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했는데, 그나마 내가 제일 나았다. 그래서 내가 기술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 또 영어다. 심지어 이번엔 설명을 해야 한다. 잘 할 수 있을까? 지난번 전철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영어로 우리 제품을 어떻게 설명할지, 머릿속으로 수백번 문장을 만들었다.


중국 상하이



전시회에서 우리 제품은 인기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하루에 방문객이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다른 데가 붐벼서 한가한 곳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서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하루에 서너번정도 뿐이었다. 그래도, 미리 준비를 해서였을까. 영어로 말하기가 예전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방문객은 모두 중국인이었고, 영어를 잘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내 이름을 한자로 써주면 중국어로 어떻게 읽는지 알려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나중에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나 영어 잘하게 되었나보다. 별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기는 하지만...

1년 뒤 카자흐스탄에 출장을 갔을 때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세번째 회사에서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갔을 때도 문제가 없었다. 둘 다 협력회사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보니, 내가 하는 개떡같은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점점 늘어 갔다.

한 번 생긴 자신감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고, 계속해서 영어공부를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드는 엑스파일이었다. 시즌 전체 비디오를 점심시간마다 보았다. 물론 한국어 자막이 있는 것이었지만. 엑스파일은 내용이 내용인지라, autopsy (해부), kidnapping (납치), alien 이런 쓸데없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그나마 들리는 것이 어디냐. 인터넷으로 영어 공부와 관련된 글도 많이 읽었다. TV도 영어 방송 위주로 보았다.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영어가 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개발자로서의 해외 출장

네번째 회사는 셋톱박스를 만드는 회사였다. 유럽, 미국, 중동 등 해외 수출품을 주로 만들었다. 셋톱박스를 개발하려면 당연히 방송을 수신해야 한다. 방송은 그 나라 안에서만 수신이 되기 때문에, 개발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그 나라로 출장을 나가야 했다. 그래서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다.

개발을 하러 나가는 출장은 기간이 길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00일까지도 있는다. 방송신호 수신때문에 현지에 있는 것일 뿐, 일 자체는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다. 현지에 있는 업체와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출장나간 한국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할 뿐이어서, 일하면서 영어를 쓸 일이 없다. 방송수신장치를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일 티비를 봐야 한다. 하지만 방송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다. 현지마다 조금씩 방송 신호의 특색이 다른데, 수신은 잘 되는지, 채널은 다 잡히는지, 립싱크는 맞는지, 소리는 잘 나는지 등 기술적인 사항만 점검할 뿐이다. 그래서 방송 콘텐츠의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른다. 한번 출장을 가면 일이 끝나야만 돌아올 수 있었다. 한정된 기간 안에 개발을 끝내야 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휴일도 없이 매일 매일 일만 했다. 그래서 현지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다.


영국 런던



개발자로서의 첫 출장지는 영국 런던이었다. 숙소는 New Malden에 있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이었다. 하숙집에서 아침 저녁을 주고 도시락까지 챙겨주니 밥 먹을 걱정은 없었다. 하숙집 냉장고에는 항상 맥주와 소주가 가득차 있었으니, 술을 마시러 나갈 일도 없었다. 일은 차로 30분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법인 사무실에서 했다. 법인 직원은 한국인 반, 영국인 반이었는데, 우리 담당자는 한국인 직원이었다. 출퇴근은 렌트한 차로 했다. 영국에 있었지만, 영어를 쓸 일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일만 하면 되는 환경이었다.

하루는 회사 동료들과 근처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다. 차를 주차시키고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골랐다. 계산대에서 물건을 계산하는데, 계산원이 물었다. “Do you want me to help you park?” 뭐라고, 주차를 시켜주겠다고? 주차를 어디에 했냐는 뜻인가? “우리 차 주차장에 있어.”라고 대답했더니, “No, I mean help you park.”라며, 물건을 봉지에 담는 시늉을 한다. 아, park이 아니라 pack 이었구나. Pack을 영국식으로 ‘팍'이라고 발음한 것이었다. 아, 내 영어는 아직도 멀었구나. 역시, 내 자신감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영국 외에도 호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독일,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 개발 출장을 다녔다. 현지인과 간단한 의사 소통은 되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말을 나눌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내 수준이 그 정도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영어는 계속해서 접했다. 기껏해야 한국어 자막 있는 미드 보기, 팝송 가사 듣기 정도였지만, 가끔씩은 짧은 연설문을 듣고 외우기도 했다.

출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예를 들어 비즈니스 관계처럼, 사적이든 공적이든 친분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쉽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영어를 알아 들으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개떡같이 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는다. 하지만 마트 직원처럼 친분이 없는 사람과의 대화를 하면 내가 못알아 들어서 난처한 상황이 많이 생긴다. 이런 경우,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들보다 더 어려웠다. 미국, 영국, 호주의 마트 직원은 내가 못알아 들으면 짜증을 냈다. 그네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 듣는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고 내 문제였다. 반면에, 스웨덴, 핀란드의 마트 직원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했는데, 내가 못알아 들으면 내가 이해할 때까지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내가 못알아 들은 이유는 자기가 설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거의 못해도 손짓 발짓까지 써 가며 설명해 주었다.

관리자로서의 해외 출장

경력이 늘어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관리자이다 보니, 고객사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덴마크향 프로젝트를 할 때는 고객사를 상대로 기술적인 윈도우 역할도 같이 했다. 덴마크 고객사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기술적인 요구사항이 굉장히 많고 자세했다. 그만큼,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의 양도 엄청 많았다. 이메일을 보내거나, JIRA같은 이슈 트래킹 시스템을 주로 이용했다. CC(Conference Call; 전화회의)는 매주 두 세번씩 있었다. 내 업무시간의 대부분은 영어를 쓰게 되었다.


덴마크 코펜하겐



처음에는 영어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엄청 스트레스였다. 짧은 글을 쓰는 것도 한시간씩 걸렸다. 가끔씩 출장을 나가면, 양사 사람들 십여명이 모여서 하루 종일 회의를 했다. 모두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대부분 내가 알아듣기 어려웠다. 집중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곧 머리의 에너지가 다 소모되어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한번은 고객사에서 한국으로 워크샵을 하러 오게 되었다. 계약을 앞두고 하는 것이라 틀어지면 안되는 웍샵이었다. 2박 3일 일정이었다. 일정의 1/4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내용으로, 내가 주도하고 발표해야 하는 것이었다. 2주 전부터 밤늦게까지 발표 준비를 했다. 회사에서는 자료 준비를 했고, 출퇴근 시간이나 집에서는 영어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심지어 영어로 발표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다행히 발표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스스로의 능력에 놀랐고 대견했다. 직장 생활 15년 동안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던 것이 효과가 있긴 있었던 것 같다.

여느 프로젝트처럼, 이번에도 고객사에 개발 출장을 나갔다. 여느 프로젝트와는 달리, 더 자주,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이 나갔다. 고객사의 요구사항이 많고 디테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출장에 빠짐없이 나갔다. 내가 테크니컬 윈도우이기 때문이었다. 출장을 나가면 하루의 반 이상을 고객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했다. 직접 1:1로 대화하는 것이었다. 요구사항의 디테일을 파악하기 위해서, 나는 고객사의 많은 담당자들과 직접 대화해야 했다. 나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고객사 사람들도 내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 주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심지어, 팀장이 덴마크 직원들 상대로 연설을 해야 할 때, 우리가 끼어 있다고 영어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하는 특색은 사람마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우물우물 말하고, 어떤 사람은 더듬더듬 말하고, 어떤 사람은 또박또박 말하고, 어떤 사람은 대충대충 말했다. 발음이나 억양도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한 사람의 특색도 파악하기 어려운데, 수십명의 특색을 파악하고 알아들어야 했다.

그러기를 수 개월. 처음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도 많았는데, 점차 알아듣게 되었다. 더불어, 표현력도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표현을 쓰는구나, 이런 식으로 말하면 빠져나갈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당장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이라면, “I'll see what I can do.”라고 하면 넘어갈 수 있다. 이런 표현을 실전으로 익히게 된 것은 대화에 엄청 도움이 되었다.

나는 영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 프로젝트의 진행이 나의 영어에 달려 있었다. 고객사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내 집중해야만 했다. 의사 전달을 제대로 못한 날은, 퇴근 후에 ‘어떻게 표현했어야 좋았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점차 영어로 꿈을 꾸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아졌다.

6개월 정도 지나 프로젝트 종료를 두 달 앞두고 있을 때. 내 스트레스는 절정에 달했다. 겨드랑이에 대상포진이 생긴 채로 약을 챙겨 출장을 나가기도 했다.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아서 2개월 휴직을 했다. 휴직하는 동안 원 없이 놀았고,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꿈같은 시간을 다 보내고, 복직을 했다. 하지만, 끝나 있어야 하는 프로젝트가 오히려 기간이 더 늘어나 있었다. 나는 다시 예전 역할로 돌아갔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힘들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 다음 프로젝트의 고객사는 본사가 네덜란드에 있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이번에도 고객사에 개발 출장을 나갔다. 다국적 기업이라서 그런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개발이나 테스트 엔지니어는 인도나 동유럽 사람들이 많았다. 관리자나 디자이너는 네덜란드나 영국 사람들이 많았다. 사내 공용어는 물론 영어였다. 각자 자기네 나라 억양으로 영어를 말했다. 나도 콩글리시 발음으로 말했다. 제각각 억양이지만, 다들 잘 알아 들었다.

일본 사람과의 영어 대화

그 다음 프로젝트는 일본향 이었다. 그 프로젝트는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아주 높았다. 그리고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특수 기능들을 많이 넣어야 했다. 그래서 일본 여러 회사로부터 소프트웨어를 사서 우리 제품에 탑재해야 했다. 우리가 납품받는 소프트웨어 회사도 일본회사이고, 우리가 납품하는 고객사도 일본 회사였다. 갑-을-병 구조에서 을의 위치에 있었다. 나는 병 회사들과의 윈도우 역할을 맡았다.


일본 도쿄



일본 사람들의 영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읽기는 잘한다. 쓰기는 그럭저럭 한다. 천천히 말하면 대부분 알아 듣는다. 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은 잘 못한다. 내 세대에서는 영어를 미국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면 혓바닥에 빠다 발랐냐고 핀잔을 주었다. 오히려 약간 콩글리쉬 발음을 해야 서로 편하다. 일본인은 이게 더 심하다. 일본식으로 하는 영어 발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영어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과의 미팅에서는 대체로 일본어가 사용된다.

우리 회사에는 일본 법인에서 고용한 영업 담당 일본인이 있었다. 그 분은 나이가 60이 넘은 분인데, 영어가 유창하고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일본어의 통역은 항상 그 분이 맡았다. 그래서 미팅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3개 국어가 사용되었다. 일본 사람들끼리 일본어로 이야기 하면, 그 분이 영어로 통역을 해 주고, 한국 사람들끼리는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내가 맡은 회사와의 회의에서는 한국인은 나 혼자 뿐이라서, 영어와 일본어만 사용되었다. 그 분과 나는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본인끼리는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회의는 대부분 일본어로 진행되었고, 나는 주로 그네들의 결론을 통역으로 듣기만 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이슈가 많지 않아서 그런 방식이 괜찮았다. 하지만, 점점 이슈가 많아지고, 나와 일본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양이 많아지니까, 이제는 통역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영어의 비중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일본인도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엄청 부끄러워 한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심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 기분을 잘 안다. 이제는 저쪽에서 말하는 개떡같은 영어를 내가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저쪽에서 영어로 쭈뼛쭈뼛 무언가를 말하면, 나는 과장해서 알아들었다는 몸짓을 보였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데 머뭇대고 있으면, 내가 먼저 이런 말 하려는 거냐고 되물었다. 칠판에 그림도 그리고, 손짓 발짓 몸짓 다 동원했다. 분위기를 띄우려고 간간히 못하는 일본어도 섞었다. 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엔지니어끼리의 대화는 어렵지 않다. 칠판에 그림을 그리면 대부분 통한다. 한 두달 지나니, 일본인 엔지니어의 영어에 점점 자신감이 보였다. 그러면서 상호간에 신뢰가 쌓여갔다. 대화는 점점 좋아졌고, 이슈는 점점 해결되었다.

영어를 잘 하는 나라의 공통점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 출장과 여행을 다녔다. 아마 20개국 정도 될 것 같다. 영어가 외국어인 나라 중에는, 영어를 잘하는 나라도 있고, 못하는 나라도 있다. 영어를 잘하는 나라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TV 방송에서 영어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방송 콘텐츠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는 당연히 미국이고, 두번째는 영국이다. 즉, 전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영어로 만들어진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411152600073

한국, 방송콘텐츠 수출 세계 3위…日 "한류 따라잡겠다" | 연합뉴스

한국, 방송콘텐츠 수출 세계 3위…日 "한류 따라잡겠다", 김병규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17-04-11 17:08)

www.yna.co.kr

순위 국가 수출액 (단위: 만달러)
1 미국 2,130,800
2 영국 333,100
3 한국 32,000
4 일본 23,800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 등 영어를 잘하는 국가에서 TV를 보면, 자국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 뉴스, 토크쇼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외국 콘텐츠이고,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에서 만든 것이다. 미국의 영화, 영국의 예능 같은 것들이다. 그런 콘텐츠를 방송할 때는, 오디오는 원어 그대로이고, 화면 아래에 자국어 자막이 나간다. 오디오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경우는 어린이 프로그램 뿐이다. 자국어가 영어와 뿌리가 같아서 별로 거부감이 없는 지도 모른다. 자체 콘텐츠를 제작할 인프라가 없거나, 외국 콘텐츠를 더빙할 인력이 모자라는 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TV를 틀면 열에 일곱은 영어가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좋건 싫건 영어를 많이 접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거지 한 명이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내 앞으로 와서 스웨덴어로 뭐라 뭐라 했다. 내가 영어로 스웨덴어 할 줄 모른다고 이야기 했더니, 거지는 영어로 구걸을 했다. 국제 거지


반면에, 폴란드, 러시아,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나라의 TV를 틀면, 자국에서 만든 콘텐츠 비중이 높다. 외국 콘텐츠도 웬만하면 오디오를 자국어로 더빙해서 방송한다. 따라서 방송으로 영어를 접할 기회가 훨씬 낮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영어 잘하는 나라와 못하는 나라의 차이점이다.

일하면서 배우는 영어의 한계

나는 업무를 하면서 영어 회화를 배웠다. 하지만 거기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비즈니스를 하는 자리에서 상대방의 틀린 영어를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내가 상황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 문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 듣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늘지가 않는다.

아직도 영화를 볼 때 자막이 없으면 하나도 이해가 안된다. 영어 자막도 안된다. 반드시 한국어 자막이 있어야 한다. 영화나 뉴스에서 나오는 영어는, 내 수준에는 너무 빠르고 어렵다. 대학교때 그 친구와는 여전히 큰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숙어나 표현을, 나는 너무 모른다. 예를 들면, take over, pull over 이런 표현이다. 다 아는 단어인데, 합쳐 놓으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것들. 우리식으로 하면, 발이 넓다, 손이 크다, 귀가 얇다, 이런 표현.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비즈니스를 하거나 업무 관련된 대화를 하다보면 자주 만나는 상황, 그런데서 쓰는 영어 패턴에만 익숙할 뿐이다.

몇 년 전에 본 내 토익 점수는 790점이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 그냥 시험 보고 나온 점수이다.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900점을 쉽게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공부한지 35년이 넘었고, 인생의 2/3동안 영어를 공부했는데도 기껏해야 요정도 수준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알게된다. 그래서 아직도 영어를 공부한다.

내가 하는 영어 공부 방법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TED에서는 미국인이 중국어를 3개월만에 마스터했다는 것도 들었다. 그러니, 분명 빠른 방법은 있을 것이다.

미국인 입장에서 배우기 가장 어려운 언어 TOP 4는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아랍어이다. 미국인이 중국어를 3개월에 마스터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effectivelanguagelearning.com/language-guide/language-difficulty/

Language Difficulty Ranking

The Foreign Service Institute (FSI) has created a list to show the approximate time you need to learn a specific language as an English speaker. After this particular study time you will reach 'Speaking 3: General Professional Proficiency in Speaking (S3)'

effectivelanguagelearning.com


가장 빨리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은 애인을 사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도 고객사 대응을 해야하는, 즉 영어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엄청 늘었으니까. 그렇다고 와이프를 버리고 애인을 사귈 수는 노릇이니,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고등학교때 영어 선생님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책을 통째로 외운다며, 영어 단편 소설을 소개해 주셨었다. 진짜로 책을 다 외우기는 어렵겠지만, 가능한한 많은 문장을 외우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일 것이다. 듣기를 잘 하려면 많이 듣는 것 보다 집중해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내 인생 철학은, “돈이나 시간 들여 노력하지 말자”는 것이다. 안그래도 할꺼 많고 놀꺼 많은데, 오롯이 영어공부 하는데만 시간을 들일 수는 없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하려면 재미도 있어야 한다. 그런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내가 찾은 방법은, 출퇴근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mp3로 듣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마다 mp3를 듣는다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으면 그것을 mp3로 만들었다. 그리고, 출퇴근 할 때마다 들었다. 재미있게 본 영화이므로 웬만한 장면은 다 알고 있다. 소리로만 들어도 무슨 장면인지 떠오른다. 내 출퇴근 시간은 1시간 20분이 걸린다. 영화 한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루면 다 들을 수 있다. 한달이면 스무번은 들을 수 있다. 그 정도 들으면 반 정도는 대사가 들린다. 안들리는 대사는 인터넷에서 자막이나 대본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가끔씩 대본을 정독해 보면, 이런 대사가 있었나 싶은 곳이 있다. 그런 부분은 잘 안들린 부분이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대사를 외우진 못한다. 외우는 것은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사가 들리기는 한다. 반드시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를 들어야 한다. 안그러면 끝까지 듣기도 어렵다.

리차일드라는 영국 작가가 쓴 잭리처 시리즈 소설이 있다. 나는 그 소설이 재미있어서, 한국어로 번역된 전편을 다 읽었다. 그 사람의 소설을 원작으로, '잭리처', '잭리처: 네버고백'이라고 톰크루즈 주연의 영화도 있다. 영화 '잭리처'는 소설 'One Shot'이 원작이다. 영화도 재미있게 보았고,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존 자회사인 Audible에 가면 'One Shot'이 오디오북으로 있다. 처음 가입하면 책 한권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회원 가입해서 무료로 One Shot을 다운받고 바로 회원을 탈퇴했다. One Shot은 14시간 30분 길이이다. 처음에는 1.2배속으로 들어도 잘 이해가 안되었다. 한바퀴 듣고나서, 소설을 읽고, 다시 들어보면 점점 들리는 양이 많아진다. 지금까지 대여섯 바퀴 들은 것 같다. www.audible.com/pd/Jack-Reacher-One-Shot-Audiobook/B00LI9GZTM

One Shot

Check out this great listen on Audible.com. Six shots. Five dead. One heartland city thrown into a state of terror. But within hours the cops have it solved: a slam-dunk case. Except for one thing. The accused man says: You got the wrong guy. Then he says:

www.audible.com


최근에는 수영에 재미를 붙였다. 유튜브에서 영어로 된 수영 강의를 여러개 다운로드 받아서 mp3로 만들었다. 그것도 출퇴근 할 때마다 듣는다. 유튜브는 자막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니, 자막 구하기도 쉽다.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라서,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간단하고 효과적인 영어 공부의 요령

내 경험상, 영어는 어떤 계기가 있으면 확 는다. 예를 들어, 애인을 사귀거나, 혼자 외국을 여행하거나, 외국인과 같이 일을 하거나 등등, 영어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확 늘려면 평소에 공부를 꾸준히 해 두어야 한다. 인터넷에 보면 영어 공부를 하는 방법이 많이 나온다. 받아쓰기, 책 외우기, 자기소개하기 등등, 모두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단순히 꾸준히 한다고 해서 영어가 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영화 많이 본다고 무조건 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반복해야 한다. 가장 쉽게 집중하고 반복하는 방법은 좋아하는 것과 엮는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듣고, 좋아하는 소설을 계속 듣고, 좋아하는 강의를 계속 듣는 것이다. 한 영화를 계속 보는 것은 지겹다. 하지만, 계속 듣는 것은 의외로 할 만 하다. 듣는 것은 출퇴근 시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콘텐츠가 길든 짧든 상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라서 반복해서 들어도 지루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수시로 스크립트를 정독하는 것이다. 정독을 하면 콘텐츠가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한 번 못들은 부분은 여러번 들어도 잘 안들리는데, 정독하면 점점 못들은 부분이 들린다. 잘 들었다고 생각한 부분도 '아, 이런 문장이었어?' 하고 제대로 알게된다.

간단하고 효과적인 영어 공부의 요령: 좋아하는 콘텐츠를 반복해서 듣고 정독한다.


내가 쓴 방법이 영어 공부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 시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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