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며, 일반화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헤엄
어렸을 때 여름이면 강에서 많이 놀았다. 튜브 같은 것은 없던 시절이라 주로 개헤엄을 치면서 놀았다. 배운 적은 없었어도 남들 하는거 보고 따라해서 개헤엄 정도는 칠 수 있었다. 겁도 없이 한 길이 넘는 곳도 건너다녔다. 그래봐야 몇 미터 가는게 고작이었지만, 어쨌든 건널 수는 있었다. 잘 하는 친구들은 양 팔을 번갈아 휘저으며 제법 그럴듯하게 헤엄을 쳤다. 앞에 ‘개'자를 떼고 불러줄 만 할 정도로 그럴싸해 보였다. 장마에 불어난 강을 건너가는 친구도 있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에 놀러 갔었다. 나지막한 보에서 물로 뛰어 들며 놀았다. 보 아래는 떨어지는 물살에 파여 깊은 곳도 있었다. 어쩌다 그런 곳으로 뛰어 들었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급한 마음에 개헤엄을 치며 나오려고 했는데 빨아당기는 물살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난 순식간에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나를 본 친구가 물에 뛰어들었다. 헤엄을 잘 치는 친구였다. 친구가 가까이 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친구 머리를 잡아 눌렀다. 머리가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있었으면 잡아 눌렀을 것이다. 친구 덕분에 겨우 물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친구는 능숙하게 헤엄쳐서 나왔다. 둘 다 빠져나왔으니 상황은 종료된 것.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물에 뛰어 들며 놀았다. 하지만, 나는 깊어보이는 곳으로는 절대 뛰지 않았다.
중학교 이후로는 강에서 노는 일은 없었다. 강이 아니라 물에 들어갈 기회도 없었다. 결혼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바닷가나 물놀이장에 가게 되었다. 물론 개헤엄에 물장구나 치면서 놀았다.
진짜 수영을 보고 반하다
어느 날, 바닷가 리조트에 놀러 갔을 때였다. 우리 방 앞에는 작은 야외 풀장이 있었다. 풀장에서 놀다가 지루해져서 바닷가로 놀러 갔다. 한참을 걸어나가도 허리까지 밖에 안오는 얕은 바다였다. 약간 쌀쌀한 날씨여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튜브를 타고 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여자가 수영을 하고 오는 것을 보았다. 자유형이었다. 양손을 천천히 번갈아 젓는데, 그 몸짓이 서두름 없이 우아하면서 부드러웠다. 진짜 수영을 본 적이 없던 나는, 와, 이런게 수영이란 거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에 비하면 내가 하던 개헤엄은 허우적거림이었다.
나도 수영을 잘 하고 싶어졌다. 바닷가에서 돌아와 풀장에서 자유형 흉내를 내 보았다. 아무리 해봐도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몇 번 해 보다가 포기. 혼자서는 안되고,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장기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가고 있었다. 출장 일정은 보통 불규칙하고 급하게 결정되었다. 그래서 수영을 배우러 다닐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마음속에 수영의 꿈은 갖고 있었다.
유튜브로 수영 강좌를 보다
하루는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수영 강좌를 찾아보았다. 어떤 수영 강좌를 보게 되었는데, 이런 멘트로 시작하는 비디오였다.
“우아하고 효율적으로 수영하기는 누구나 마스터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배우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쉽다.”
https://youtu.be/vVEMAzdo8nM?t=2653
그 비디오는 자유형과 배영을 배우는 18 단계를 설명했는데, 그대로만 따라하면 누구나 쉽게 편안하고 우아한 수영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나처럼 나이 들은 사람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란다. 호기심에 끝까지 보았다. 별거 아닌 듯한 동작들이 단계별로 연결 연결이 되어 결국 자유형 배영까지 연결되었다. 동작도 엄청 쉬워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저대로만 하면 진짜 수영을 잘 하게 되는 건가?
내가 본 것은 TI (Total Immersion) 수영 강습법이라고, 유명한 것이었다. TI 수영 강습법은 미국의 Terry Laughlin이 창시한 것으로, 몸의 균형을 잡고, 유선형으로 만들어 저항을 최소화하고, 몸통을 돌리는 힘으로 추진력을 만듦으로써, 적은 힘으로 효율적으로 수영하기를 추구한다. www.totalimmersion.net/
The World's Top Swim Training Videos | Total Immersion Swimming
www.totalimmersion.net
유튜브에는 한국 사람이 만든 수영 강습 비디오도 많이 있었다. 내친김에 여러 개를 차근차근 보았다. 유튜브로 본 수영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유튜브 강사들도 하나같이 이렇게 하면 된다고 요령을 쉽게 알려 주었다. 이제 어느정도 기초적인 요령은 머릿속에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진짜 수영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수영 강습을 시작하다
몇 년 후, 회사에서 맡은 일이 바뀌어 당분간 출장을 나갈 일이 없게 되었다. 수영을 배울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전부터 봐 둔 수영장에 등록을 하러 갔다. 초급 중급 상급반 선택을 해야 했다. ‘난 수영 비디오도 여러 개 보았고, 개헤엄도 칠 줄 아니까, 초급은 아니지 않을까?’하고 1초 정도 생각했다가 겸손하게 초급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게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는, 강습을 받고 바로 깨달았다.
첫 수업 시간. 초급반에는 학생들이 열 댓명 정도 있었다. 나는 처음 왔으므로, 옆에 있는 얕은 풀에서 음파 호흡부터 배웠다. 물속에 얼굴을 넣고 코로 숨 내쉬고, 물 밖으로 얼굴을 빼고 입으로 숨 마시고. 간단했다. 유튜브랑 똑같네. 이 정도야 껌이지. 자신감 뿜뿜. 강사가 다음 단계로, 벽 잡고 발차기를 해 보란다. 유튜브에서 본대로 무릎을 펴고 발차기를 했다. 강사가 잘 한다고 칭찬했다. 후훗. 역시 나야. 어렸을 때 강에서 놀던 가락이 어디 가진 않았구만.
발이나 손을 대고 하는 동작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그걸 가지고 자신감 뿜뿜 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오는 일이다.
잠시 후 강사가 부른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킥판 잡고 발차기를 하란다. 훗. 벌써 본대에 합류하는 건가? 나는 학생들의 맨 뒤에 섰다. 맨 앞사람부터 차례 차례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나도 출발했다. 그런데, 전혀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힘들고 숨차서 얼마 못 가 일어서기 일쑤였다. 반은 발차기, 반은 걷기로 겨우 겨우 한 바퀴 돌았다. 맨 앞 사람은 벌써 두 바퀴를 돌아, 바로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남들 두 바퀴 돌 동안, 나는 한 바퀴. 그것도 반은 걸어서. 이게 내 실력이었다. 아, 수영이 쉬운게 아니구나 알게 되었다.
다음 날은 머리를 물에 집어 넣고 킥판 잡고 발차기를 했다. 머리 집어 넣고 숨 내쉬면서 여섯 번 발차기하고, 머리 들고 숨 들이쉬면서 두 번 발차기하고. 유튜브로 여러 번 봐서 알고 있던 동작.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동작.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전혀 아니었다. 힘은 들지, 앞으로는 안나가지. 숨은 차지. 고개를 들어 헉헉 숨을 쉬고. 머리를 집어 넣고 다시 힘차게 발차기. 숨이 더 차올라 고개를 들면 여전히 제자리.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앞으로 슝슝 가는거지? 이번에도 반은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이번엔 손동작을 더했다. 두 손으로 킥판을 잡고, 한 손을 번갈아 젓는다. 왼손을 저을 때는 고개를 넣고 숨을 내쉰다. 오른손을 저을 때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숨을 들이쉰다. 그러는 동안에도 발차기는 계속 한다. 왼손을 젓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오른손을 저을 때가 문제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코로 물이 들어오거나, 입으로 물을 먹거나, 얼굴이 물에 잠겨 숨을 들이쉴 수가 없거나, 셋 중 하나였다. 발을 땅에 대고 연습할 때는 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을 땅에서 떼면 곧바로 어푸 어푸가 되었다.
수영을 잘 하려면 기본적으로 운동신경, 유연성, 기초체력 등이 필요하다. 나는 운동신경도 없고, 유연성도 없고, 기초체력도 없다. 게다가 나이도 많아. 강사가 나를 보고 얼마나 답답해 했을지 상상이 안간다.
강사는 팔을 펴라, 무릎을 펴라, 머리를 어깨에 붙여라, 숨쉴때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라 등등 주문이 많았다. 나도 노력 하고 있다구. 안되는걸 어쩌라고. 팔에 신경쓰면 무릎이 구부러지고, 옆을 보면 코에 물이 들어가고, 숨을 들이쉬면 물을 먹고. 아, 총체적 난국이다. 다른 사람들은 곧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한다. 나이 먹고 이게 무슨 꼴인가.
저 강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 백정이다. 저 인간은 내 고통을 알기나 할까? 숨을 들이쉬려고 하면 물도 같이 들어와. 하도 물을 먹어서 배가 불러. 물이 코로 들어오면 따가워 죽을꺼 같애. 얼굴을 미처 밖으로 못내밀었을 때는 숨도 못쉬어. 그럴 때는 죽음의 공포가 느껴진다구. 진짜 숨 못쉬어서 죽을 것 같애. 이젠 물에 얼굴을 넣기만 해도 공포스럽다구. 이런 내 심정을 알아? 아냐구?
그냥, 그 때만 잠깐 그런 느낌이었다구요. 지금은 그런 생각 전~~혀 없습니다. 못난 저를 가르쳐 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꾸벅~
강사도 그런 내 심정을 알았나보다. 요령을 하나 알려주었다. 레인 끝에서 쉴 때에도 머리를 완전히 담그고 호흡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물에 머리를 완전히 넣고 코로 숨을 내쉬다가, 잠깐 얼굴을 빼서 입으로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물에 들어가고. 레인 끝에 왔을 때 숨이 차더라도 이 방법으로 숨을 쉬면 점점 편안해 진다고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날이 갈수록 숨이 조금씩 편해지고 공포심도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물을 안먹게 된 것은 아니고, 물을 먹어도 예전처럼 공포스럽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점점 물에서 호흡하는데 익숙해진 모양이다.
처음으로 25m를 건너다
배우기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강사가 킥판 없이 가 보라고 했다. 오오. 이제 진짜 수영으로 가는 건가? 내가 킥판 없이 갈 수 있을까? 첫 시도에서는 반도 못갔다. 그래도 반은 갔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보름쯤 더 지나서, 25미터를 수영으로 건넜다. 풀의 끝에서 끝까지. 킥판 없이. 드디어!!! 오, 감동이야!!! 감동!!! 힘들어서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감동에 마음도 벅차올랐다. 뭔가 큰 거를 하나 해낸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감격의 순간을 맛본 다음부터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수영이 점점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강습 시간 앞뒤로 있는 10분간의 쉬는 시간에도 연습을 했다. 자유수영을 하는 날도 빼먹지 않고 나갔다. 물은 여전히 많이 먹었지만 말이다.
물은 정말 많이 먹었다. 한시간 수업을 받고 나면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강사에게 이것을 호소하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영선수들도 물을 먹는다며, 물이 입에 들어가면 뱉으라고 한다. 아,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구나. 이건 뭐, ‘싱거우면 소금을 치라'는 정도로 당연한 솔루션이네.
초보자인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수영 고수들은 입속에 들어간 물을 뱉어낸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몇 달이 걸렸다. 여전히 잘 못하긴 하지만.
수영을 하고 나서 허리띠가 두 칸이 줄어들었다. 몸무게도 7kg이 빠졌다. 두세달만에 일어난 변화다. 생각보다 운동량이 엄청난 모양이다. 매일 수영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이 즐거워졌다. 어느정도 빠진 몸무게는 다시 평형상태를 유지했다. 더 찌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고. 운동으로 뺀 것이라 그런지 요요현상은 없었다.
어느 날은 신기한 경험하기도 했다. 그 날은 수업을 마치고 유독 기분이 좋았다. 몸이 후끈거려 찬 물로 샤워를 했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발걸음이 가벼워서 반은 뛰어서 왔다. 내친김에 아파트 13층까지 뛰어 올라갔는데도 별로 숨이 차지 않았다.
아마도 러너스하이 (Runner’s High) 현상을 겪었던 것 같다. 러너스하이란, 힘든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다가 어느 정도 이상을 지나면 갑자기 힘이 나고 행복감이 들고 운동을 더 하고 싶어지는 현상이다. 주로 달리기를 할 때 많이 나타나지만, 수영, 자전거, 축구 등 장시간 운동을 할 때도 나타난다고 한다. 여기에 한 번 빠지면 마약처럼 중독된다고 한다. https://www.mk.co.kr/news/it/view/2020/08/863495/
[오늘부터 달린다] 하늘을 나는 기분…`무아지경` 러너스 하이
달리기를 즐기다 보면 처음에는 숨이 차고 힘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뿐해진다. 뛰는 도중 어느 순간 시공간을 초월한 듯 기분이 좋아지며,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지는 상태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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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반으로 올라가다
수영을 배운지 4개월째.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초급반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원래 초급반은 이것 저것 가르쳐야 할 것이 많아서 강사가 엄청 바쁘다. 이번 달에는 강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었다. 그래서 일부 인원은 중급반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나도 그 중에 끼어있었다. 내 실력은 중급에 갈 실력이 안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밀려 올라가게 된 것이다. 뭐, 가라면 가야지 어쩔 수 있나.
중급반의 수업 시간에는 크게 세 가지를 했는데, 자유형 3바퀴 평영 2바퀴 이런 식의 뺑뺑이, 영법의 부분 동작에 대한 강사의 설명과 시범, 그리고 부분 동작을 집중적으로 익히기 위한 드릴 연습이다. 학생들은 이미 기초 영법을 다 배운 사람들이었으므로, 초급반 수업처럼 영법을 하나 하나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접영이나 오리발은 배워본 적도 없었다. 강사가 따로 간단히 해 주는 설명만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옆사람이 하는 것을 곁눈질로 보며 따라해야 했다.
아무래도 나는 내 실력에 비해 너무 빨리 중급반으로 올라온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밀려 올라온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뺑뺑이나 드릴을 할 때는 줄의 맨 뒤에 섰다. 내가 출발해서 반쯤 가면 선두는 이미 내 바로 뒤까지 바싹 쫓아와 있었다. -아,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 쫓기지 않으려는데 바빠서 전혀 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실력이 거의 늘지 않았다.
수영은 다른 운동 보다도 폼이 중요하다. 폼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도 폼이 엉성하면 허우적대기만 할 뿐 별로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힘이 약해도 폼이 좋으면 앞으로 쭉쭉 나간다. 수업시간에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여자 쪽이 유연성이 더 좋아서 자세를 쉽게 잡기 때문이다.
두 달쯤 지나서 여름이 되니, 학생들이 더 많아졌다. 초급반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밀려올라왔다. 우리 반에서도 몇명이 상급반으로 밀려 올라갔다. 서서히 숨통이 트였다. 반편성은 매달 되었다. 잘 하는 사람은 상위반으로 올라가고, 하위반에서 올라온 사람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면서 내 순위는 점점 올라갔다.
수업시간에는 빠른 순서대로 선다. 맨 앞에 서면 수업이 편하다. 제일 빠르기 때문에 뒤에서 쫒기지 않는다. 제일 먼저 출발해서 제일 빨리 도착한다. 마지막 사람이 허우적대는 것을 보며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다. 앞에 서던 사람이 결석을 했을 때 나도 맨 앞에 서 본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며칠 후 반편성이 되면서 나는 상위반으로 올라갔다. 다시 맨 뒤에 섰다. 다시 쫒기기 시작했다.
자유수영시간에는 TI 드릴을 연습하다
수업시간에 강사가 하는 설명과 시범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를 알고 싶은데, 강사는 개개인의 자세에 대한 말은 별로 하지 않는다. 물어보는 것에는 잘 대답을 해 준다. 내 자세가 너무 이상하면 지적을 해 준다. 하지만 개인 별로 가르쳐 주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 수영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드릴 연습을 할 필요가 있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하는 자유수영은 드릴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상대적으로 싼 수업료를 내고 많은 인원이 같이 듣는 수업에서 개인별 코치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개인별 코치를 받으려면 개인교습이나 과외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내가 바이블로 삼았던 것은 TI 수영 강습법이다. 맨 처음 접한 수영 비디오라서 인상이 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접근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비디오는 요령을 알려주지만 이것은 원칙을 알려준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가장 효율적으로 수영하기 위해서는 몸을 수면과 수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TI 수영에서는 효율적으로 수영하기 위해 단계적인 드릴을 제시한다.
드릴이란, 영법의 특정 동작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반복하는 훈련이다. 예를 들어, 발차기 드릴, 몸의 앞 뒤 균형을 높이기 위한 드릴, 사이드킥 드릴 등 수많은 드릴이 있다.
TI 드릴은 초보자가 하기에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나이 들은 사람도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동작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몸에 익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수영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난 워낙 운동신경도 없고 체력도 없으니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다른 수영장으로 옮기다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은 수원시 산하기관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2월 중순부터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언제 다시 문을 열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수영 게시판을 기웃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을 열고 있는 수영장을 찾아냈다. 위치도 출퇴근길 중간에 있었다. 유레카. 이거다. 여기로 수영장을 옮기자. 월화목은 수업, 수금토는 자유수영으로, 자유수영이 예전보다 하루 많았다. 자유수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좋은 조건. 바로 등록하고 새 수영장을 다녔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레인 수는 5개로 똑같았는데, 레인의 너비가 더 넓었다. 얕은 풀도 길이가 15미터로 길었다. 그래서 훨씬 여유롭게 수영할 수 있었다.
크기는 여유로왔지만 내 실력은 중급반에서 꼴찌 수준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남들 네바퀴 돌 때 세바퀴밖에 못돌고. 그것도 마지막은 걸어서. 평영은 정말 못했는데, 속도도 느렸지만 25미터만 가면 지쳐서 떡실신이 되곤 했다. 운동 거리는 남들 반밖에 안되었을텐데 칼로리 소모량은 두 배는 되었을 것이다. 다이어트 효율이 좋다고 해야 하나? 강사에게 더 낮은 반으로 옮겨달라고 했더니, 거기는 초급반이라며 그냥 여기서 하란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안좋은 케이스다. 별 수 있나. 하라는 대로 해야지.
나름 1년을 넘게 한 수영인데 참으로 실력이 늘지를 않았다. 뭐, 그러려니 한다. 체력, 유연성, 운동신경 전부 없는 나니까. 이쯤 되면 포기할만도 한데, 신기하게도 수영이 계속 좋았다. 포기할 생각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새 수영장을 3개월쯤 다닐 무렵 어깨를 다쳤다. 어깨충돌증후군이었다. 의사가 어깨 쓰는 일은 절대 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을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으니 점점 나아지기는 했는데 수영 수업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쉬엄쉬엄 자유수영만 해도 30분만 지나면 어깨가 아파서 할 수가 없었다.
강습은 안듣고 자유 수영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수영 수업은 못듣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자유수영만 했다. 깊은 풀에서 자유형을 하기도 하고, 얕은 풀에서 드릴 연습을 하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만큼 무리하지 않고 했다.
수영은 어깨를 많이 쓰는 운동이다. 그런데, 어깨를 안쓰고 수영을 할 수는 없을까? 있다. TI 드릴. 지금까지 1년 반동안 수영을 했으니, 초보자용 드릴은 문제없이 할 수 있겠지. 마침, 수영장 얕은 풀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 TI 드릴 연습하기 딱이었다.
TI 수영법에서 초반부의 드릴은 차렷자세로 한다. 팔이 아니라 몸으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이다.
얕은 풀에서 제일 쉬운 드릴인 누워서 균형잡기부터 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발이 땅에 닿는게 아닌가. TI 수영에서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은 몸을 완전히 수평으로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 몸이 당연히 수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이 땅에 닿는다? 내 몸이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다. 완전히 착각하고 있던게 아닌가. 제일 기초부터 안되고 있었다. 큰 충격이었다. 이래서 그동안 실력이 늘지 않았었나 보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깊은 레인에서 수영할 때는 전혀 몰랐다. 얕은 풀에 오니 이제야 알게 되었다.
물 밖에서 똑바로 서는 것은 아주 쉽다. 중력의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몸이 1도라도 앞으로 기울어지면 바로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물 속에서 수면과 평행하게 누워 있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물 속에서는 부력때문에 중력의 피드백이 아주 약하기 때문이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내가 똑바로 누워 있는지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어렵다.
TI의 제일 기초 드릴인 누워서 균형잡기 드릴, 스윗스팟 드릴부터 다시 연습했다. 일주일 정도 하니 누워서 뒤로 기댄 자세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가끔씩 발을 아래로 내려 바닥과의 높이를 가늠해 보는 식으로 몸이 얼마나 잘 평행으로 있는지를 체크했다. 얕은 풀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 다음, active balance, skating, stop-stop-switch 등의 드릴을 차례차례 연습했다.
누워서 균형잡기를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머리를 물속에 푹 담그고 눈, 코, 입만 간신히 내놓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많이 잠길 수록 다리가 떠올라서 수평을 이룬다. 예전에 이 드릴을 연습할 때는 물살이 얼굴 위로 넘어올 때가 아주 고역이었다. 코나 입으로 물이 들어가기 일쑤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들게 된 것 같다. 지금은 훈련이 되었는지, 물살이 넘어올 것 같으면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내쉰다. 그리고 어쩌다 물이 들어와도 잘 참는다.
혼자서 연습하면서 알아낸 점이 또 있었는데, 내 왼팔과 어깨가 몸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수영 초보자들이 그렇듯, 나도 오른쪽으로만 호흡을 한다. 그런데 호흡을 할 때마다 속도가 확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호흡을 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릴 때 왼팔이 머리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서 물의 저항을 많이 받는 것이었다. 어깨가 아파서 그런 건지 습관이 잘못 들어서 그런 건지 알수가 없지만, 앞으로 뻗은 왼팔을 머리에 붙이는 자세가 영 어색하다. 이 자세는 아직도 교정을 하고 있다.
아픈 어깨 때문에 몇 달 동안 수영 강습을 못듣고 혼자서 연습을 해야 했다. 그 덕분에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알게 되고 고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깨도 점점 나아졌다. 어깨 재활을 위해 근육 운동도 열심히 했다. 간혹 깊은 풀에서 25미터 시간을 재 보면 30초 초반까지도 나왔다. 이전보다 8초정도 단축된 셈이니, 엄청난 결과이다. 스트로크 숫자도 13번에서 9~10번 정도로 줄었다. 아마도 TI 드릴과 근육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 이리라.
자유형 호흡하기
수영을 배우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호흡, 특히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숨을 들이마시려면 입이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의 딜레마는 입을 내미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번 떨어진 속도를 다시 올리려면 힘이 배가 든다. 그러니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시간을 짧게 가져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입이 물 밖으로 나와있는 잠깐의 시간을 200% 활용해야 한다.
몸을 롤링하여 입이 물밖으로 나오는 타이밍을 잡아 입을 벌린다. ‘드디어 입이 바깥으로 나왔군. 이제 입을 벌려 볼까?’ 하면 이미 늦다. 물밖으로 나올 타이밍을 미리 예상해서 직전에 입을 벌리기 시작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숨을 마신다. 헙! 하고 숨을 가만히 꿀꺽 삼켜야 한다. 허~~업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물을 먹게 되기 쉽다. 입을 다문다. 이 때 입은 이미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야 한다. 익숙해지면 들어온 물을 다시 뱉어낼 수 있다.
이렇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려면 타이밍이 항상 일정해야 한다. 스트로크를 할 때마다 팔이나 다리를 이용해서 보정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킥이 약하게 들어가서 롤링하는 힘이 안나오는 것 같으면 스트로크로 롤링을 조금 더 보태주는 식이다. 나는 몇 달 정도의 연습을 하고 나서야 이런 움직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움직임이 불안 불안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쪽 호흡만 배운다. 왼쪽 호흡은 따로 가르쳐 주지 않고 알아서 연습하는 것이다.
가끔씩 왼쪽 호흡을 해 보면 자세가 영 어색하다. 롤링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내밀어 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물을 잡아 눌러야 나온다. 영락없는 초보자 폼이다. 왼쪽 호흡이 익숙해 지려면 오른쪽 시절처럼 몇 달은 물을 먹어야 할 것이다. 양쪽으로 다 호흡을 하게 되면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 같다. 1.5스트로크마다 양쪽으로 번갈아서 호흡하기, 이것이 나의 목표이다.
내가 수영 실력을 향상시킨 방법
수영장 벽에는 큰 디지털 시계가 있었다. 자유수영을 할 때는 그 시계를 힐끔 보며 25m 가는 시간을 재곤 했다. 중급반에 처음 올라가서는 25m를 가는데 50초 정도가 걸렸는데, 그 숫자는 한동안 줄어들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한가지 팁을 알게 되었다. 바로 손동작과 발차기를 동기화하는 것이다. 왼손 스트로크를 시작할 때는 왼발로 발차기를 시작, 오른손 스트로크를 시작할 때는 오른발로 발차기를 시작. 이 리듬을 익히니까 손동작과 발차기가 훨씬 자연스러워 졌다. 시간도 당장 40초 중반대로 줄어들었다.
수영을 처음 배울때는 손과 발차기의 리듬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초보자는 리듬보다 손, 발, 호흡 등 각각의 동작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개의 동작을 익힌 다음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 발차기 리듬에는 한 스트로크 사이클에 하는 발차기 횟수에 따라 2비트킥, 4비트킥, 6비트킥이 있다.
TI 수영에서 제일 쉽게 자유형 실력을 늘리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고개를 들지 말고 아래를 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 법칙이 있다. 부력때문에 인간 몸의 일정한 부피는 무조건 수면 위에 있어야 한다. 고개를 들면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간다. 그만큼 다리가 가라앉는다. 다리가 가라앉으면 몸이 기울어지고, 전면에서 보이는 단면적이 늘어난다. 그만큼 물의 저항이 늘어나고 힘이 들어가고 속도가 감소한다. 반대로, 고개를 들지 말고 똑바로 아래를 보면 머리가 수면 위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엉덩이와 다리쪽이 떠오른다. 그만큼 몸이 수면과 평행해 질 수 있다.
또 하나는 몸을 최대한 길게 늘리는 것이다. 그래야 물의 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자세를 좀 다르게 설명하자면,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 한다고 생각하자. 양발의 뒤꿈치를 들어 까치발을 한다. 허리를 곧게 편다. 한쪽 팔과 어깨를 최대한 위로 올린다. 다른 팔은 아래로 내려 몸 옆에 붙인다. 머리는 힘을 빼고 앞을 본다. 바로 그 자세다. 땅 위에서 이 자세를 취하는 것은 쉽다. 발목을 펴고 있거나, 허리가 굽어있거나, 팔이 몸과 일자로 뻗어있지 않으면 높이가 낮아질테니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반면에 물 속에서 이 자세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력과 시각의 피드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고, 엎드리거나 누워서 몸을 쭉 편 자세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디오를 열심히 보면 좋은 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좋은 폼으로 수영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가뜩이나 몸이 뻣뻣한 나는 팔을 뻗고 있는 것 만으로도 힘이 많이 든다. 허리 힘도 없어서 조금만 지쳐도 허리가 굽혀진다. 중력과 시각적 피드백 없이, 물 속에서 내 몸이 좋은 자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만의 방법이 있다.
거울 앞에 서서 눈을 감는다. 수영 스트로크 동작을 한 번 해서 최대한 길게 늘린 자세를 만든다. 팔과 어깨를 앞으로 쭉 뻗고 버티는 자세가 된다. 그 상태로 눈을 뜨고 거울을 본다. 처음 하면 허리가 비틀어지거나 팔이 옆으로 삐져나오는 등 이상한 자세가 나온다. 내 경우는 예상보다 팔이 몸 안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적당한 팔과 허리의 각도를 만든다. 그 때 어깨와 허리에 가해지는 힘의 느낌을 기억한다.
아마 몸이 유연하거나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은 이런 연습을 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 사람들이 그저 부럽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 태어난 거, 생긴대로 살아야지.
수영에 이미 빠져들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빠져든 운동이 있었던가. 20여년 전에 스키 스노보드에 완전히 빠진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처음이다. 반에서 맨날 꼴찌만 하면서도 수영이 좋다. 신기하다. 왜일까. 살을 뺄 수 있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하다는 본능 때문에? 단 한번 겪어본 러너스하이 때문에?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강습을 받기 전부터 난 이미 수영에 빠져 있었다. 얼마나 갈 지 모르겠지만 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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