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집 마당에는 헛개나무가 있다. 장인어른은 해마다 헛개나무 열매와 가지를 따서 말려두신다.
올해는 코로나로 식구들은 못가고 나만 처가집에 갔다. 장인어른이 담근 술 한 병을 주신다. 그리고, 말려놓은 헛개나무 열매도 주신다. 술 먹는 사람에게 좋단다. 집에 와서 와이프에게 보여줬더니, 술주고 약주냐며 웃는다. ㅎㅎ. 맞는 말이네.
헛개나무는 꿀이 많이 나와 꿀벌나무(bee tree)라고도 불린다. 중국 고전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실수로 헛개나무 토막 하나를 술독에 빠뜨렸는데, 술이 모두 물로 변했다"고 하고, "헛개나무로 집안 기둥이나 서까래를 쓰면 집안의 술이 모두 물로 변한다"고도 한다. 중국인들 뻥은 알아줘야 하지만, 숙취에 좋기는 한가 보다.
숙취, 주독해소와 간 기능 활성, 정혈, 갈증 해소, 해독작용 등이 우수하고 개화기에 활성 화합물이 다량 함유된 기능성 벌꿀을 생산할 수 있는 점이 헛개나무의 효능으로 꼽힌다고 한다. http://know.nifos.go.kr/webzine/201905/m2_2.do
숲과 나무 이야기
건강을 지키는 달콤함, 밀원수 헛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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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오긴 했는데, 먹으려면 차를 끓여야 한다. 와이프한테 끓여 달라고 하다가, 술을 먼저 끊으라고 잔소리 들을 것이 귀찮아, 그냥 내가 직접 끓이기로 마음먹었다.
난생 처음 해 보는 헛개나무차 끓이기. 어떻게 하는 거지? 양은 얼마나 넣고 시간은 얼마나 끓여야 되나? 잠깐 고민했는데. 나, 공대 나온 남자다. 이럴 땐 단순 무식하게 직진한다.
봉지에서 헛개나무 열매와 가지를 한움큼 꺼냈다. 물에 여러번 헹구어 불순물을 제거했다.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넣었다. 씻은 헛개나무를 넣고 가스렌지에 불을 붙였다.
인터넷에 보니 나쁜 성분 날라가라고 뚜껑을 열고 끓인다고 하는데, 난 근거 없는 말이라고 본다.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뚜껑은 덮고 끓인다. 한푼이라도 아껴야지. 얼마나 끓이나? 대충 끓이고 싶은 만큼 끓인다. 많이 끓이면 진해지고, 조금 끓이면 연해진다. 진하다 싶으면 물을 타서 마시면 되고, 연하다 싶으면 많이 마시면 된다. 라면을 끓일 때도 물 맞춰 시간 맞춰 끓이지만, 헛개나무는 만만해 보여 근거없는 허세가 생긴다. 내 간도 지켜주고, 용기도 주니, 별거 아닌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쓸모가 많네. 고맙다. 잘 먹어주마.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으려니, 뚜껑이 들썩들썩 한다. 불을 살짝 줄이고 TV를 보다가, 얼마나 지났을까, 더 이상 신경쓰기 싫어져서 가스불을 껐다. 뚜껑을 열어보니, 색깔이 그럴듯 하다. 오. 대충 했는데도, 색깔 잘 나왔네. 한 국자 떠서 훌훌 불고 마셔보았다. 달달하니 맛도 좋다. 성공한건가? 후훗. 나란 사람, 천재임에 틀림 없다.
철망으로 위에 뜬 열매와 가지를 걷어냈다. 한참을 식혔다가 물병에 따랐다. 마지막에 가라앉아있는 찌꺼기가 들어가지 않게 조심했다. 들뜬 마음에 한 잔을 더 마시고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에 두었다가 한잔씩 따라서 마시면 뱃속이 시원해진다. 왠지 더 건강해진다는 기분에 마음도 편안해진다. 장인어른의 수고 덕분에 또 하나의 행복을 얻었다. 헛개가 지켜줄테니 기분 좋게 맥주 한 깡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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